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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명성왕후를 시해하기 위해 들어왔던 '돈의문(서대문)' 」


'선을 넘는 녀석들' 에서 서울의 4대문에 대해서 언급을 하면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현재 존재하지 않는 '돈의문(서대문)'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 말기 일본에서 명성왕후를 시해하기 위해 통과했던 '돈의문'. 돈의문은 명성왕후 시해라는 아픈 역사의 통로로 생각이 될 만큼 슬픔을 안고 있는 서울 4대문 중 하나입니다. 

서대문이라고 하여 서울 서대문구에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 중구 정동 현재 경향신문 사옥 앞 정동사거리의 자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서대문구에 돈의문 터가 있었지만 1975년 서대문구에서 중구로 편입되면서 현재는 중구가 되는 것이지요. 

 


1396년에 돈의문이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태종 13년에 풍수학생 최양선이 풍수적으로 돈의문 자리가 좋지 않다고 주장하여 폐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태종 때 돈의문 대신 '서전문' 이라고 경희궁이 있던 서쪽 언덕에 재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세종 4년에 세종이 서전문을 헐고 오늘날 신문로 언덕 위에 옛 이름 그대로 '돈의문'을 새롭게 세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돈의문의 성문과 성루가 낡아서 숙종 37년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그렇게 '돈의문'은 세월이 흘러 잘 유지가 되는 듯했으나 일제강점기 1915년에 일본이 서울을 개발하며 평평한 돈의문의 자리에 철도를 세우기 위해 돈의문을 헐어버립니다.  우리나라 역사가 담고 있는 우리나라의 성을 일본이 그들이 마음대로 헐어버리는 것이지요. 

 


이때 일본은 '돈의문'과 함께 '흥인지문(동대문)' 과 '숭례문(남대문)' 도 함께 허물려고 했으나 흥인지문과 숭례문은 일본이 조선을 쳐들어온 관문으로 기리기 위해 남겨두고 '돈의문'만 헐었다고 합니다. 
다행이지만 슬픈 역사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조선 초부터 약 오 백 년간 서쪽 대문 역할을 하던 돈의문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요. 
IT강대국입니다.  2019년 8월 20일 돈의문에 대한 증강현실로 복원이 완료되어 터로 알려진 정동사거리에 돈의문 조형물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 증강현실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실제 돈의문이 있던 정동사거리를 앱으로 보면 현실감 있는 돈의문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증강현실 앱으로 돈의문(서대문) 내부까지 경험할 수 있다고 하니 꼭 한 번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을 볼 수 없지만 조선 500년동안 서쪽 대문의 역할을 한 우리 역사의 '돈의문' 을 아이들과 함께 체험해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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